민화란 무엇인가
조선시대에는 민화를 ‘속화(俗畫)’라고 불렀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따르면, 민간의 병풍, 족자 또는 벽에 붙어 있는 그림을 속화로 일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민간의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그림은 신분제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민화의 수요는 급증하였습니다. ‘속화’라고 해서 민간에서만 유행했던 것은 아니고, 왕실, 관청, 사찰, 신당에 이르는 다양한 곳에서 민화를 향유하였습니다.
‘민화(民畵)’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은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입니다. 20세기 전반 일본에서 민중예술 이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던 가운데, 야나기는 조선 민화에 대한 연구와 수집의 필요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민화를 ‘민중에 의해 태어나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사용된 그림’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채화(彩畵)’라는 용어를 제안하는 학자도 있었는데, 일반적으로는 ‘민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여러 학자들은 ‘민화’, ‘한화(韓畫)’, ‘겨레그림’ 등의 용어를 제시하며 민화를 민족의 그림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습니였습니다. 1980년대에는 민화에서 민중 미술의 특성을 부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학계에서는 ‘민화’의 용어 적절성을 논하며 새로운 대안이 될 만한 단어를 찾으려고 여전히 노력 중입니다.
민화를 보다 폭넓게 정의하면 선사시대 암각화, 고대 고분벽화 등도 거론할 수도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민화를 주로 서술하고자 합니다.
민화의 유통
민화가 언제부터 보편적으로 제작·유통되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19세기 무렵 서울의 시장에서는 그림 매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수도 한양의 모습을 노래한 『한양가(漢陽歌)』에는 종로 광통교 아래에서 백자도(百子圖),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구운몽도(九雲夢圖), 십장생도(十長生圖), 신선도(神仙圖) 등이 병풍이나 낱장으로 제작되어 유통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誌)』,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등에도 광통교 아래 가게에서 백자도 병풍을 팔았습니다. 백자도는 백 명의 아이들을 화폭에 담아 자손의 번성, 건강, 행복 등을 기원하는 그림으로, 일반 가정의 혼례병풍이나 집 내부의 장식품으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곽분양행락도는 중국 당의 무장 곽자의(郭子儀)의 생일잔치를 그림으로써 부귀, 장수 등을 바라는 그림입니다. 구운몽도의 경우는 김만중(金萬重)의 소설 『구운몽』의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하여 민화가 많이 그려졌습니다. 또한 십장생도, 신선도 등도 불로장생,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민간의 소원을 담아 유통되었습니다.
20세기 초에 우리나라에 이탈리아 총영사로 와 있었던 카를로 로제티(Carlo Rossetti)의 저서 『꼬레아 꼬레아니(Corea e Coreani, 1904년 출간)』에는 “한국의 어느 집에나 같은 그림들이 걸려있고, 종로에 복제화와 종이를 파는 상인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고 서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그는 “몇 전만 주면, 용이나 호랑이, 날개 돋친 말, 옛 전사들의 환상적인 형상들을 구할 수 있다.”고 기술하였습니다. 20세기 초 민화의 수요가 보편적이었고, 민화 구입도 쉬웠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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