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필기체의 결과

필기체(cursive)는 글꼴의 한 종류로, 일반적으로 손으로 휘갈겨 쓰듯이 쓴 모양의 글꼴을 말합니다. 즉 단순히 손으로 쓴 듯한 느낌을 주는 글꼴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빠르게 휘갈겨 쓰기 위해 글자와 글자를 변형하고 이어서 쓸 수 있게 구조화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필기체라고 하면 로마자 알파벳의 필기체를 말합니다. 로마 필기체는 그나마 알아보기 쉬우나, 키릴 필기체는 인쇄체와 상당히 다른데다 비슷한 글자끼리 연속되는 일이 많아 쓰기/읽기 둘 다 쉽지 않습니다. 참고로 같은 로마자 알파벳 필기체라 하더라도 필자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으며, 언어권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정부가 표준 필기체를 지정해 보급해 왔는데, 독일어를 위한 "독일식 필기체"와 외국어를 위한 "라틴식 필기체"가 서로 다릅니다.

한글은 모아쓰기 문자이기 때문에 다른 문자처럼 필기체를 만들기엔 꽤나 어려운 글입니다. 필기체의 핵심이라 하면 펜을 떼지 않고 한번에 휘갈기듯 쓸 수 있게 하는 것인데, 한글을 그렇게 써 버리면 아예 알아보기 어렵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글의 경우 자모 하나하나를 한 획에 이어 쓰는 '흘림체'가 주로 쓰입니다. 주로 4~60대 어른들이 메모를 하거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때에 사용하는 글씨체입니다. ㄹ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글 필기체의 경우 몇몇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개발하여 사용하는 것은 있지만 서구권 같이 보편적으로 상용되는 것은 없습니다. 굳이 한글 필기체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면 수필 속기에 사용되는 속기법일 것이나, 그마저도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선 컴퓨터 속기가 대신하였다가 최근에는 그마저도 안 쓰이고 스마트폰이 쓰입니다. 백강이라는 서예가가 고시생들이 한정된 시간 내에 빠른 속도로 긴 답안을 흘려 써도 가독성을 잃지 않고 손목에 무리가 덜 가도록 개발한 '백강고시체' 도 고시가에서는 꽤 유명합니다. 사법시험이 폐지된 이후 그 명성이 조금 빛은 바랬지만 나름 명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답안을 쓰기 위해 글꼴을 변형했다는 점에서 필기체의 요소가 꽤 들어있고 실제로 백강고시체를 숙련한 고시생들은 거의 타자치는 속도에 맞먹게 답안을 쓰기도 합니다. 물론 답안용 서체라는 점에서 가독성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기에 완전한 필기체로 보기에는 어렵기는 합니다. 하지만, 한글에 필기체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한글 필기체를 만들어서 쓰기도 하며, 풀어쓰기를 연구한 학자들, 사람들이 한글을 풀어쓸 때 쓸 필기체를 만들어 놓은 것 또한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로마자나 키릴문자처럼 공식적인 필기체는 없습니다.